이세윤(李世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138C724B1632X0 |
자(字) | 경술(敬述) |
호(號) | 역와(櫟窩) |
생년 | 1730(영조 6) |
졸년 | 1798(정조 2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진성(眞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세윤(李世胤)
1730년(영조 6)∼1798년(정조 22).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자는 경술(敬述)이고, 호는 역와(櫟窩)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예안면(禮安面)이다.
부친은 세자익위사익찬(世子翊衛司翊贊)을 역임했던 이수연(李守淵)이고, 모친은 김화국(金華國)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형 이세면(李世勉)‧이세근(李世劤)과 동생 이세초(李世劭)가 있다.
1777년(정조 1) 증광시 생원 3등 9위로 합격하였으며, 적성현감(積城縣監)‧제용부봉사(濟用副奉事)‧장흥주부(長興主簿)‧감찰(監察)‧사직서령(社稷署令)‧장릉참봉(莊陵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적성현감으로 재임 중에는 백성들을 후덕하게 다스렸다. 이로 인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 성품이 청렴하고 몸가짐은 소탈하였으며, 본분을 지켜 선정(善政)을 펼쳤다고 평가받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강론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훈고학(訓詁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이중엽(李中燁)‧이중찬(李中燦)이 편집‧간행한 『역와문집(櫟窩文集)』이 전하는데, 그 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장릉참봉 재임 중 느낀 바를 기록한 「월중행록(越中行錄)」‧「속행록(續行錄)」,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학설을 부정한 「답인(答人)」 등이 있다.
부친은 세자익위사익찬(世子翊衛司翊贊)을 역임했던 이수연(李守淵)이고, 모친은 김화국(金華國)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형 이세면(李世勉)‧이세근(李世劤)과 동생 이세초(李世劭)가 있다.
1777년(정조 1) 증광시 생원 3등 9위로 합격하였으며, 적성현감(積城縣監)‧제용부봉사(濟用副奉事)‧장흥주부(長興主簿)‧감찰(監察)‧사직서령(社稷署令)‧장릉참봉(莊陵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적성현감으로 재임 중에는 백성들을 후덕하게 다스렸다. 이로 인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 성품이 청렴하고 몸가짐은 소탈하였으며, 본분을 지켜 선정(善政)을 펼쳤다고 평가받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강론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훈고학(訓詁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이중엽(李中燁)‧이중찬(李中燦)이 편집‧간행한 『역와문집(櫟窩文集)』이 전하는데, 그 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장릉참봉 재임 중 느낀 바를 기록한 「월중행록(越中行錄)」‧「속행록(續行錄)」,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학설을 부정한 「답인(答人)」 등이 있다.
[참고문헌]
茶山詩文集
承政院日記
承政院日記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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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