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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흠(宋益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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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시해(時偕)
생년1708(숙종 34)
졸년1757(영조 33)
시대조선후기
본관은진(恩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송익흠(宋益欽)
1708년(숙종 34) 1월 18일∼1757년(영조 33) 11월 10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시해(時偕)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출신지는 충청남도 회덕군(懷德郡: 현 대덕군(大德郡) 회덕면)이다.

증조부는 공조정랑(工曹正郞) 송광식(宋光栻)이고, 조부는 장악원정(掌樂院正) 송병하(宋炳夏)이다. 부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송요화(宋堯和)와 모친 군수(郡守) 김성달(金盛達)의 딸 호연재(浩然齋)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현감(縣監) 민승수(閔承洙)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750년(영조 26) 서사(筮仕)로 천거되었다. 1751년(영조 27) 도감감조관(都監監造官)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1754년(영조 30)에 이르기까지 금부도사(禁府都事)‧홍천현감(洪川縣監)‧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보은현감(報恩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타고난 기질이 고상하고 행동을 삼가며, 말을 하면 일에 맞으니 자연히 도(道)에 가까웠다. 일찍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을 흠모하여 곁에서 모셨다.

문장에 뛰어난 자질이 있었고, 특히 시는 고풍스럽고 그윽한 아취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시인으로 명성이 있었던 모친 호연재와 외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향년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송기연(宋起淵)이다.

묘는충청남도 회덕군 송촌(宋村)에 있다.

[참고문헌]

櫟泉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