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악(金光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D11C545B1694X0 |
자(字) | 수이(秀而) |
호(號) | 독좌와(獨坐窩) |
생년 | 1694(숙종 20) |
졸년 | 1759(영조 3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정상(金鼎相)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광악(金光岳)
1694년(숙종 20)∼1759년(영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동첨(東瞻)‧수이(秀而), 호는 독좌와(獨坐窩). 김정상(金鼎相)의 아들이다.
1726년에 사마양시에 응시하여 생원시에 장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73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간 뒤 감찰로 나갔다가 1736년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이 되었는데, 당하관으로 승교(乘轎)하였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고, 이어 현릉령(顯陵令)을 지내다가 귀향한 뒤 효성으로 이름이 나서 충청도관찰사 서종급(徐宗伋)의 추천으로 흡곡현령(歙谷縣令: 지금 강원도 통천의 한 지명)에 제수되었다.
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충과 믿음도 돈독하여 참의 김변광(金汴光), 교리 권세숙(權世橚)과 함께 당시 호서지방의 진신(縉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또한, 근세인의 좋은 말과 행동을 수집, 그 이름을 『문견록(聞見錄)』이라 하고 모범으로 삼았다.
1726년에 사마양시에 응시하여 생원시에 장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73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간 뒤 감찰로 나갔다가 1736년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이 되었는데, 당하관으로 승교(乘轎)하였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고, 이어 현릉령(顯陵令)을 지내다가 귀향한 뒤 효성으로 이름이 나서 충청도관찰사 서종급(徐宗伋)의 추천으로 흡곡현령(歙谷縣令: 지금 강원도 통천의 한 지명)에 제수되었다.
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충과 믿음도 돈독하여 참의 김변광(金汴光), 교리 권세숙(權世橚)과 함께 당시 호서지방의 진신(縉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또한, 근세인의 좋은 말과 행동을 수집, 그 이름을 『문견록(聞見錄)』이라 하고 모범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順菴集
正祖實錄
國朝榜目
順菴集
[집필자]
조정기(趙楨基)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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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