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휘(兪彦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C5B8D718B1693X0 |
자(字) | 군미(君美) |
생년 | 1693(숙종 1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기계(杞溪)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유홍기(兪弘基) |

[상세내용]
유언휘(兪彦徽)
1693년(숙종 1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군미(君美)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조부는 유명심(兪命諶)이고, 부친은 유홍기(兪弘基)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에 진사 3등 19위로 합격하였다.
1737년(영조 13) 유언휘가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된 적이 있음을 이유로 파직을 요청하는 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 김상로(金尙魯)의 상소로 인해 파직되었다. 이후 1743년(영조 19) 재령군수(載寧郡守) 재임 당시에는 대사간(大司諫) 권영(權塋)이 김일경(金一鏡)의 문객으로서 한세량(韓世良)을 위한 소장을 쓴 것을 이유로 파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영의 상소에 대해서 유언휘가 좌의정(左議政) 송인명(宋寅明)에게 고하여 권영을 논박하려 했다는 것과 유언휘의 아들이 권영에게 모욕을 준 일로 인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영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1751년(영조 27)에는 유언휘가 조정에서 하직한 이후에도 부임지로 가지 않고,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박첨의 상소에 따라서 파직되었다.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유응수(柳應秀)‧유응무(柳應茂)이다.
조부는 유명심(兪命諶)이고, 부친은 유홍기(兪弘基)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에 진사 3등 19위로 합격하였다.
1737년(영조 13) 유언휘가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된 적이 있음을 이유로 파직을 요청하는 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 김상로(金尙魯)의 상소로 인해 파직되었다. 이후 1743년(영조 19) 재령군수(載寧郡守) 재임 당시에는 대사간(大司諫) 권영(權塋)이 김일경(金一鏡)의 문객으로서 한세량(韓世良)을 위한 소장을 쓴 것을 이유로 파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영의 상소에 대해서 유언휘가 좌의정(左議政) 송인명(宋寅明)에게 고하여 권영을 논박하려 했다는 것과 유언휘의 아들이 권영에게 모욕을 준 일로 인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영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1751년(영조 27)에는 유언휘가 조정에서 하직한 이후에도 부임지로 가지 않고,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박첨의 상소에 따라서 파직되었다.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유응수(柳應秀)‧유응무(柳應茂)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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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