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치(權緻)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AD8CCE58FFFFB1680X0 |
| 자(字) | 맹견(孟堅) |
| 호(號) | 토헌(土軒) |
| 생년 | 1693(숙종 19) |
| 졸년 | 1766(영조 4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안동(安東)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권치(權緻)
1693년(숙종 19) 12월 12일∼1766년(영조 42) 3월 1일.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맹견(孟堅)이고, 호는 토헌(土軒)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권정(權挺)이고, 조부는 권선(權愃)이다. 부친 권익(權榏)과 모친 박서(朴湑)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신완(申浣)의 딸 아주신씨(鵝州申氏)이다.
종조숙부(從祖叔父)인 병곡(屛谷) 권구(權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행동이 간결하고 검소하여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다.
1725년(영조 1) 증광시 생원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그 후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권정규(權鼎揆)와 함께 서기관(書記官)이 되어 출정하려고 했으나 관군이 적을 물리쳤다는 소식에 해산하였다. 1734년(영조 10)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영남(嶺南)의 유림들이 국문(鞫問)을 당할 때, 부친의 상중(喪中)임에도 불구하고 국문에 임했다.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권부(權裒)를 두었다.
저서로 『토헌집(土軒集)』이 있다.
종조숙부(從祖叔父)인 병곡(屛谷) 권구(權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행동이 간결하고 검소하여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다.
1725년(영조 1) 증광시 생원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그 후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권정규(權鼎揆)와 함께 서기관(書記官)이 되어 출정하려고 했으나 관군이 적을 물리쳤다는 소식에 해산하였다. 1734년(영조 10)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영남(嶺南)의 유림들이 국문(鞫問)을 당할 때, 부친의 상중(喪中)임에도 불구하고 국문에 임했다.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권부(權裒)를 두었다.
저서로 『토헌집(土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司馬榜目
土軒集
土軒集
[집필자]
김경희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