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강백(姜栢)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C15BC31FFFFB1690X0
자(字)자청(子靑)
호(號)우곡(愚谷)
생년1690(숙종 16)
졸년1777(정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강석주(姜碩周)
삭녕최씨(朔寧崔氏)
조부강무(姜珷)
외조부최윤신(崔胤紳)
저서『가훈(家訓)』
저서『해사록(海槎錄)』
저서『우곡집』

[상세내용]

강백(姜栢)
1690년(숙종 16)∼1777년(정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청(子靑), 호는 우곡(愚谷).

부친은 강석주(姜碩周)이며, 모친은 삭녕최씨(朔寧崔氏)최윤신(崔胤紳)의 딸이다.

할아버지 강무(姜珷)에게서 글을 배웠고, 어려서부터 시에 재능을 보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에 합격,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1등, 1727년(영조 3) 정시(庭試)에 장원하여 승문원박사성균관전적호분위부사맹(虎賁衛副詞猛)을 지냈다.

1728년 성환찰방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순무사이던 오명항(吳命恒)강백의 도움으로 공을 세우고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이 되었는데도 강백은 책훈할 때 오히려 무고한 죄를 입어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유배기간 동안 철산 지방의 젊은이를 교육, 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과거에 많은 합격자를 낸 공로가 참작되어 1732년 죄가 감형되어 정산현감에 제수, 1769년 통정에 오르고 한성부우윤이 되었으나 곧 체직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저서로 『가훈(家訓)』『해사록(海槎錄)』이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특히,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풍부하였고 일반 유학자의 시와 비교하면 불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등 보다 다양하고 넓은 시적 세계를 지녔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의 문집인 『우곡집』 6권에 전한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집필자]

권영대(權永大)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