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하(鄭益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75D558B1688X0 |
자(字) | 자겸(子謙) |
호(號) | 회와(晦窩) |
시호(諡號) | 충헌(忠獻) |
생년 | 1688(숙종 14) |
졸년 | 1758(영조 3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익하(鄭益河)
1688년(숙종 14)∼1758년(영조 34).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겸(子謙), 호는 회와(晦窩), 겸재(謙齋)이다.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증조부는 정양(鄭瀁)이고, 조부는 정보연(鄭普衍)이다. 부친 정천(鄭洊)과 모친 심약명(沈若溟)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1년(경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예조참판‧도승지‧대사헌(大司憲)‧형조참판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검열로 재직 중 『숙종실록』의 개수를 반대하였으며, 1730년(영조 6)에는 지평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대사간(大司諫) 홍현보(洪鉉輔)의 상소를 물리친 영조의 태도를 비판하였다.
이후 경상도관찰사‧대사간‧대사성‧함경도관찰사‧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을 두루 역임하여, 1755년(영조 31)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증조부는 정양(鄭瀁)이고, 조부는 정보연(鄭普衍)이다. 부친 정천(鄭洊)과 모친 심약명(沈若溟)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1년(경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예조참판‧도승지‧대사헌(大司憲)‧형조참판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검열로 재직 중 『숙종실록』의 개수를 반대하였으며, 1730년(영조 6)에는 지평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대사간(大司諫) 홍현보(洪鉉輔)의 상소를 물리친 영조의 태도를 비판하였다.
이후 경상도관찰사‧대사간‧대사성‧함경도관찰사‧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을 두루 역임하여, 1755년(영조 31)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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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