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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하(尹宗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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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시백(時伯)
생년1687(숙종 13)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윤정량(尹廷亮)

[상세내용]

윤종하(尹宗夏)
1687년(숙종 1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시백(時伯)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거주지는 경(京; 서울)이다.

증조부는 윤인(尹𡐔)이고, 조부는 윤필성(尹弼星)이며, 부친은 윤정량(尹廷亮)이다. 외조부는 홍우적(洪禹績)이고, 처부는 신백주(申伯周)이다. 동생으로 윤종리(尹宗履)‧윤종주(尹宗周)가 있다.

1710년(숙종 36) 증광시 진사 3등에 56위로 합격하였으며, 1725년(영조 1) 증광시 을과에 3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729년(영조 5) 지평 권신(權賮)이 의심받을 짓을 했다가 죄를 물을 상황이 되오자 말에서 떨어졌다는 핑계로 당장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상소를 올려 권신이 파직되게 만들었다. 같은 해에 사간(司諫) 서종옥(徐宗玉)과 함께 문외송출(門外送黜)을 당한 심수현(沈壽賢)을 먼 곳으로 유배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또 같은 해에 역모를 일으킨 중심에 있던 밀풍군(宓豊君) 이탄(李坦)을 극형에 처할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탄이 자진(自盡)하도록 하는데 여론 조성의 역할을 하여 결국 이탄이 자결하게 하였다. 그 해에 바람에 쓰러진 경복궁(景福宮)의 나무를 베어내어 민간에 팔아먹은 수직군(守直軍)과 국법으로 금한 기첩(妓妾)을 데리고 사는 관료들을 엄하게 다스릴 것 등을 사간원에서 연명 상소할 때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