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두(趙明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A85B450B1687X0 |
자(字) | 사앙(士仰) |
생년 | 1687(숙종 13) |
졸년 | 1720(숙종 4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임천(林川)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조명두(趙明斗)
1687년(숙종 13)∼1720년(숙종 46).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사앙(士仰)이다. 본관은 임천(林川)이다.
승지(承旨) 운강공(雲江公) 조원(趙瑗)의 후손으로, 고조는 참판(參判) 죽음공(竹陰公) 조희일(趙希逸)이고, 증조부는 시직(侍直) 근수공(近水公) 조석형(趙錫馨)이며, 조부는 군수공(郡守公) 조경망(趙景望)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 조정만(趙正萬)과 모친 서령(署令) 이진명(李晉命)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명익(趙明翼)‧조명규(趙明奎)‧조명기(趙明箕)가 있다. 부인은 우윤(右尹) 심정보(沈廷輔)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5세 때 문장을 읽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장에 뛰어났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 진사 1등 5위로 합격한 후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문예(文藝)에 만족하지 않고 성현(聖賢)의 학문에 뜻을 두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학문이 독실하였기 때문에 주위의 기대가 컸지만,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동생 조명익의 아들 조덕수(趙德洙)를 양자로 들였다.
승지(承旨) 운강공(雲江公) 조원(趙瑗)의 후손으로, 고조는 참판(參判) 죽음공(竹陰公) 조희일(趙希逸)이고, 증조부는 시직(侍直) 근수공(近水公) 조석형(趙錫馨)이며, 조부는 군수공(郡守公) 조경망(趙景望)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 조정만(趙正萬)과 모친 서령(署令) 이진명(李晉命)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명익(趙明翼)‧조명규(趙明奎)‧조명기(趙明箕)가 있다. 부인은 우윤(右尹) 심정보(沈廷輔)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5세 때 문장을 읽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장에 뛰어났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 진사 1등 5위로 합격한 후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문예(文藝)에 만족하지 않고 성현(聖賢)의 학문에 뜻을 두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학문이 독실하였기 때문에 주위의 기대가 컸지만,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동생 조명익의 아들 조덕수(趙德洙)를 양자로 들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陶谷集
陶谷集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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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