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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朴昌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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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장(善長)
호(號)담옹(澹翁)
생년1683(숙종 9)
졸년1753(영조 29)
시대조선중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문학 > 시‧시조인
박흥준(朴興俊)
풍기진씨(豊基秦氏)
외조부진성수(秦聖修)
저서『담옹집(澹翁集)』

[상세내용]

박창원(朴昌元)
1683년(숙종 9)∼1753년(영조 29).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선장(善長), 호는 담옹(澹翁).

가선대부(嘉善大夫) 박흥준(朴興俊)의 아들이며, 모친은 풍기진씨(豊基秦氏) 진성수(秦聖修)의 딸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조부에게 수학하였고, 이어 이동언(李東彦)을 따라 학문을 익혔다.

아문(衙門)의 조보(朝報)를 담당하는 서리(胥吏)를 지냈는데, 신임사화 때인 임인년(1722)에 “요사이 조지(朝紙)의 소계(疏啓)는 그 내용이 더러워 쓰지 못하겠다.”하면서 그만두고 산사로 들어갔다.

지조가 굳고 여간해서는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으며, 항간의 비리(鄙俚)한 말은 입에 담지 않았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끼니를 잇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경전을 섭렵하여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특히 『주역』에 해박하여 독특한 괘도인 「원괘차서도(原卦次序圖)」와 「원궤방위도(原卦方位圖)」를 남기고 있는데, 자신의 경전에 대한 지식과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밖에 성력(星曆)‧음률(音律)‧지리‧의복(醫卜)에 통달하였다. 육일옹(六一翁)이라는 사람은 조선 전기 여항문인인 서기(徐起)송익필(宋翼弼)에게 비유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일생을 ‘이인(異人)의 행적(行蹟)’이라고 말하였다.

여항시인들이 활동했던 필운대(弼雲臺)와 북한산 기슭 등지에서 노닐었으며, 김원행(金元行)유척기(兪拓基) 등 주로 노론계 인사들과 종유했다. 그의 문하에서는 시인 백윤구(白胤耉)홍준해(洪準海)윤득관(尹得觀) 등이 배출되었다.

저서로 『담옹집(澹翁集)』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澹翁集(朴昌元)
里鄕見聞錄(劉在建)
風謠續選

[집필자]

이상진(李相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