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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후(吳命厚)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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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여(重汝)
호(號)만오(晩悟)
생년1682(숙종 8)
졸년1752(영조 28)
시대조선중기
본관해주(海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오덕형(吳德亨)
언양김씨(彦陽金氏)
외조부김태정(金台鼎)
저서『만오공문집』

[상세내용]

오명후(吳命厚)
1682년(숙종 8)∼1752년(영조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여(重汝), 호는 만오(晩悟).

부친은 오덕형(吳德亨)이며, 모친은 언양김씨(彦陽金氏)김태정(金台鼎)의 딸이다. 이수항(李壽沆)에게 수학하였다.

1717년(숙종 43)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가주서가 되었다.

1729년(영조 5) 분순부위(奮順副尉) 용양위부사정(龍驤衛副司正)‧이듬해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조좌랑정랑에 이어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승진하여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뒤에 영암군수로 나갔다가 흉년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고을백성들을 구휼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735년 세선(稅船)의 잘못으로 파직되어 환가하였다.

1738년 다시 성균관사예, 1744년 어모장군행용양위부사과문신 겸 선전관(禦侮將軍行龍驤衛副司果文臣兼宣傳官)에 이어 어모장군행의흥위부사과(禦侮將軍行義興衛副司果)에 배수되었다.

다음해 양산군수로 나갔다가 이듬해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며,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지냈다.

저서로는 『만오공문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晩悟公文集

[집필자]

이동술(李東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