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규(方萬規)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BC29B9CCADDCB1680X0 |
| 생년 | 1680(숙종 6) |
| 졸년 | 1725(영조 1)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남양(南陽)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방내길(方乃吉) |

[상세내용]
방만규(方萬規)
1680년(숙종 6)~1725년(영조 1).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부친은 방내길(方乃吉)이다.
1715년(숙종 41) 식년시 병과에 22위로 문과 급제한 후, 관직은 수찬(修撰)‧조지별제(朝紙別提)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1721년(경종 1)에 일어난 김일경(金一鏡) 옥사 관련자들인 심수현(沈壽賢)‧오수원(吳遂元)‧윤진(尹晉) 등을 엄하게 다스려야함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같은 해에 비망기(備忘記)로 자성(慈聖)을 무고하게 모함하고, 탕평책(蕩平策)을 반대하는 상소문(上疏文) 올린 죄를 물어 국문해야 한다는 부교리(副校理) 이광보(李匡輔)의 상소문이 올라갔고, 참형(斬刑)에 처해야 한다는 관학유생(館學儒生) 이복령(李復齡) 등의 상소문이 올라갔다. 결국 영조는 국청을 설치하여 방만규(方萬規)의 죄를 물을 것을 명령하였으며, 이때 죄의 경중을 가리기 위해 윤봉조(尹鳳朝) 등과 대질심문을 받는 등 극심한 고초를 겪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윤봉조의 경우 평안북도 삭주(朔州)로 유배를 갔다가 제주도 정의(旌義)에 안치되는 등 관련자들 모두 화를 당하였다.
부친은 방내길(方乃吉)이다.
1715년(숙종 41) 식년시 병과에 22위로 문과 급제한 후, 관직은 수찬(修撰)‧조지별제(朝紙別提)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1721년(경종 1)에 일어난 김일경(金一鏡) 옥사 관련자들인 심수현(沈壽賢)‧오수원(吳遂元)‧윤진(尹晉) 등을 엄하게 다스려야함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같은 해에 비망기(備忘記)로 자성(慈聖)을 무고하게 모함하고, 탕평책(蕩平策)을 반대하는 상소문(上疏文) 올린 죄를 물어 국문해야 한다는 부교리(副校理) 이광보(李匡輔)의 상소문이 올라갔고, 참형(斬刑)에 처해야 한다는 관학유생(館學儒生) 이복령(李復齡) 등의 상소문이 올라갔다. 결국 영조는 국청을 설치하여 방만규(方萬規)의 죄를 물을 것을 명령하였으며, 이때 죄의 경중을 가리기 위해 윤봉조(尹鳳朝) 등과 대질심문을 받는 등 극심한 고초를 겪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윤봉조의 경우 평안북도 삭주(朔州)로 유배를 갔다가 제주도 정의(旌義)에 안치되는 등 관련자들 모두 화를 당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