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기(宋命基)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1A1BA85AE30B1680X0 |
| 자(字) | 정부(定夫) |
| 호(號) | 매헌(梅軒) |
| 생년 | 1680(숙종 6) |
| 졸년 | 1755(영조 31)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야로(冶爐)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 부 | 송희(宋熙) |
| 저서 | 『퇴계서절요(退溪書節要)』 |
| 저서 |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 |

[상세내용]
송명기(宋命基)
1680년(숙종 6)∼1755년(영조 31).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다. 자는 정부(定夫)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다.
본관은 야로(冶爐)이다.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 1548∼1615)의 후손(後孫)이고, 부친은 송희(宋熙)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1727년(영조 3) 정미(丁未) 증광시(增廣試)에 생원(生員) 3등 37위로 합격하였다.
벼슬에는 뜻이 없었고 선배 유학자들과 함께 성리(性理)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특히 서헌(恕軒) 이세형(李世珩)과 '인심도심(人心道心)'과 '사단칠론(四端七論)'을 토론하고 연구하였으며, 『퇴계서절요(退溪書節要)』를 저술하였다. 학행과 덕업으로 세인들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아들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과 더불어 칠곡(漆谷)의 매양서원(梅陽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술로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이 있다.
본관은 야로(冶爐)이다.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 1548∼1615)의 후손(後孫)이고, 부친은 송희(宋熙)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1727년(영조 3) 정미(丁未) 증광시(增廣試)에 생원(生員) 3등 37위로 합격하였다.
벼슬에는 뜻이 없었고 선배 유학자들과 함께 성리(性理)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특히 서헌(恕軒) 이세형(李世珩)과 '인심도심(人心道心)'과 '사단칠론(四端七論)'을 토론하고 연구하였으며, 『퇴계서절요(退溪書節要)』를 저술하였다. 학행과 덕업으로 세인들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아들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과 더불어 칠곡(漆谷)의 매양서원(梅陽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술로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梅軒先生文集
司馬榜目
司馬榜目
[집필자]
김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