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흠(韓聖欽)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55CC131D760B1679X0 |
| 자(字) | 사경(士敬) |
| 생년 | 1679(숙종 5)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청주(淸州) |
| 활동분야 | 무신 |

| 부 | 한숙(韓塾) |

[상세내용]
한성흠(韓聖欽)
1679년(숙종 5)~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사경(士敬)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부친은 봉직랑(奉直郞) 행용안현감(行龍安縣監) 한숙(韓塾)이다. 형은 한덕흠(韓德欽)이고, 동생은 한익흠(韓益欽)이다.
1702년(숙종 28) 별시에 병과 60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선전관(宣傳官)‧태안현감(泰安縣監)‧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회령부사(會寧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06년(숙종 32)에 세상이 태평하고 백성들이 안정됨을 축하하는 진연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열렸는데, 도총부관(都摠府官)으로 참여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태안현감을 역임하면서 불법을 저지르고 정치를 잘 못하였다는 충청우도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이인복(李仁復)에 의해 국문을 당하였다. 1729년(영조 5)에 회령부사를 역임하면서 이사성(李思晟)‧남태징(南泰徵)과 함께 역모를 모의한 증거가 많이 드러났다. 이때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심성진(沈星鎭)이 정배를 청하자, 영조가 윤허하였다. 1735년(영조 11)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부친은 봉직랑(奉直郞) 행용안현감(行龍安縣監) 한숙(韓塾)이다. 형은 한덕흠(韓德欽)이고, 동생은 한익흠(韓益欽)이다.
1702년(숙종 28) 별시에 병과 60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선전관(宣傳官)‧태안현감(泰安縣監)‧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회령부사(會寧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06년(숙종 32)에 세상이 태평하고 백성들이 안정됨을 축하하는 진연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열렸는데, 도총부관(都摠府官)으로 참여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태안현감을 역임하면서 불법을 저지르고 정치를 잘 못하였다는 충청우도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이인복(李仁復)에 의해 국문을 당하였다. 1729년(영조 5)에 회령부사를 역임하면서 이사성(李思晟)‧남태징(南泰徵)과 함께 역모를 모의한 증거가 많이 드러났다. 이때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심성진(沈星鎭)이 정배를 청하자, 영조가 윤허하였다. 1735년(영조 11)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참고문헌]
숙종실록
영조실록
영조실록
[집필자]
이후남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