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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만(蔡膺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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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유언(幼言)
자(字)수언(綏彦)
생년1677(숙종 3)
졸년1746(영조 22)
시대조선중기
본관평강(平康)
활동분야문신
채성윤(蔡成胤)

[상세내용]

채응만(蔡膺萬)
1677년(숙종 3)~1746년(영조 22).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유언(幼言)‧수언(綏彦)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이고, 거주지는 충청남도 홍양(洪陽: 현 홍성군(洪城郡))이다.

증조부는 채진후(蔡振後)이고, 조부는 채시상(蔡時祥)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공주진병마첨절제사(公州鎭兵馬僉節制使) 채성윤(蔡成胤)이다. 처부는 이현기(李玄紀)이고, 동생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에 진사 2등 15위로 합격하였으며, 1723년(경종 3)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1729년(영조 5) 지평 시절 이조참판(吏曹參判) 송인명(宋寅明)에게 대간(臺諫) 자리에 들어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지평에 제수되자 같은 지평 한사득(韓師得)과 함께 지평에 나아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을 꾸며 사직단자(辭職單子)를 들이도록 하였다가 한사득과 함께 파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복직되었다. 1741년(영조 17) 장령(掌令) 김종태(金宗台)로부터 지평 시절 사직단자에 들기 위해 일을 꾸민 죄로 파직되었다가 복직되었을 때 잘못을 뉘우치는 상소 하나 없이 바로 나와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을 상기시키는 상소가 임금에게 전해져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