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삼(李斗三)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B450C0BCB1677X0 |
| 자(字) | 자건(子建) |
| 생년 | 1677(숙종 3)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함평(咸平)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이백년(李百年) |

[상세내용]
이두삼(李斗三)
1677년(숙종 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건(子建)이다.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부친은 이백년(李百年)이다.
32세의 나이에 1708년(숙종 34) 식년시 병과 19위에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예조좌랑(禮曺佐郞)‧양산군수(梁山郡守)‧결성현감(結城縣監)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양산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백성을 해롭게 하고 창고의 곡식을 판매하며 읍비(邑婢)를 간음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당시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의 공문서를 수영(水營)에 보낼 때 이인좌를 ‘대원수(大元帥)’라 호칭하였다는 죄명으로 효시(梟示)되었다. 그 뒤 정조 대에 그의 손자 유학(幼學) 이양직(李養直)이 한익모(韓翼謩)‧이재(李縡)‧이태중(李台重)의 의견을 근거로 징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여러 차례 복관을 요청하였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친은 이백년(李百年)이다.
32세의 나이에 1708년(숙종 34) 식년시 병과 19위에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예조좌랑(禮曺佐郞)‧양산군수(梁山郡守)‧결성현감(結城縣監)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양산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백성을 해롭게 하고 창고의 곡식을 판매하며 읍비(邑婢)를 간음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당시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의 공문서를 수영(水營)에 보낼 때 이인좌를 ‘대원수(大元帥)’라 호칭하였다는 죄명으로 효시(梟示)되었다. 그 뒤 정조 대에 그의 손자 유학(幼學) 이양직(李養直)이 한익모(韓翼謩)‧이재(李縡)‧이태중(李台重)의 의견을 근거로 징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여러 차례 복관을 요청하였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文科榜目
正祖實錄
國朝文科榜目
[집필자]
이동인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