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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형(朴成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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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박성형(朴聖珩)
자(字)초보(楚寶)
호(號)포정(圃亭)
생년1671(현종 1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경희(朴慶熙)
조부박근(朴根)
증조부박한기(朴漢紀)
5대조박제립(朴悌立)
외조부유위(兪煒)

[상세내용]

박성형(朴成珩)
1671년(현종 12)∼미상. 본관은 함양(咸陽), 초명은 박성형(朴聖珩). 자는 초보(楚寶), 호는 포정(圃亭).

박제립(朴悌立)의 현손(玄孫)으로, 증조부(曾祖父)는 박한기(朴漢紀)이고, 조부(祖父)는 박근(朴根)이며, 부(父)는 박경희(朴慶熙)이다. 외조부는 유위(兪煒)이다. 동생으로 박성욱(朴聖郁)박성필(朴聖珌)이 있다.

1714년(숙종 40) 갑오(甲午) 증광시(增廣試)에 진사(進士) 3등 26위에 합격하고, 1727년(영조 3) 정미(丁未)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12위에 57세의 나이로 급제하였고, 1737년(영조 13) 정사(丁巳) 중시(重試)에도 급제하였다. 1727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承政院)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로 시작하여 부사정(副司正)금부도사(禁府都事)전적(典籍)직강(直講)을 거쳐 1728년(영조 4)에 고부군수(古阜郡守)를 제수받았으나, 하루만에 6품으로 승품(陞品)하여 전직(前職)인 직강(直講)으로 차임(差任)되었다. 당시에 호남(湖南)의 수령은 새로 과거에 급제하여 경력이 없는 신출신(新出身)은 보내지 않고 무신(武臣)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상례였다. 직강이 된 지 이틀만에 예조정랑(禮曹正郞)으로 승진하였다가 창령현감(昌靈縣監)으로 부임하고, 1730년(영조 6)에는 겸춘추(兼春秋)를 겸하였다.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에는 이때 많은 치적이 있어 읍민(邑民)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고 하였는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731년(영조 7)에 경상도암행어사(慶尙道暗行御史) 이흡(李潝)박성형을 백성과 관리를 속이고 세금을 무겁게 거둬들여 부를 축적하였다고 보고하여, 의금부(義禁府)의 조사를 받은 기록이 보인다. 이후 1737년(영조 13)에 중시(重試)에 급제하고, 관직은 봉상시정(奉常寺正)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海東人物志

[집필자]

김학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