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하(鄭鎭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9C4D558B1667X0 |
자(字) | 중여(重汝) |
생년 | 1667(현종 8) |
졸년 | 1710(숙종 3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상세내용]
정진하(鄭鎭河)
1667년(현종 8)∼1710년(숙종 36).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중여(重汝)이다. 본관은 영일(迎日)이고, 거주지는 전라남도 담양(潭陽) 창평(昌平)이다.
송강(松江) 문청공(文淸公) 정철(鄭澈)의 5대손으로, 증조부는 참봉(參奉) 증집의(贈執義) 정한(鄭漢)이고, 조부는 증참의(贈參議) 정광연(鄭光演)이며, 부친은 정즙(鄭濈)이다. 외조부는 장흥임씨(長興任氏) 임시윤(任時尹)과 전주이씨(全州李氏) 이후백(李後白)이다. 처부는 창평현감(昌平縣監) 죽산안씨(竹山安氏[舊]) 안여기(安汝器)이다. 동생으로 정취하(鄭就河)‧정민하(鄭敏河)‧정택하(鄭宅河)가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문사가 화려하고 필체가 묘하였다. 여러 번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유사(有司)에게 막히자 선비들과 성리학서를 익히고 연구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부친이 죽은 후에도 계모를 잘 봉양하였으며, 사람들을 대할 때는 두 얼굴로 대하지 않았다. 부친이 전라남도 창평(昌平)에 있을 때, 간혹 집안일을 부탁하고 서울 낙산(駱山) 기슭에 우거하고 있으면 매번 찾아뵙고 일 년이나 한 달 정도 머물다 오곤 하였다. 서울과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도 봉양하는 정성을 그치지 않았다.
1696년(숙종 22) 겨울 부친이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조짐을 보고 머물러 모시었는데 이듬해인 1697년(숙종 23) 2월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에 있다.
송강(松江) 문청공(文淸公) 정철(鄭澈)의 5대손으로, 증조부는 참봉(參奉) 증집의(贈執義) 정한(鄭漢)이고, 조부는 증참의(贈參議) 정광연(鄭光演)이며, 부친은 정즙(鄭濈)이다. 외조부는 장흥임씨(長興任氏) 임시윤(任時尹)과 전주이씨(全州李氏) 이후백(李後白)이다. 처부는 창평현감(昌平縣監) 죽산안씨(竹山安氏[舊]) 안여기(安汝器)이다. 동생으로 정취하(鄭就河)‧정민하(鄭敏河)‧정택하(鄭宅河)가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문사가 화려하고 필체가 묘하였다. 여러 번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유사(有司)에게 막히자 선비들과 성리학서를 익히고 연구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부친이 죽은 후에도 계모를 잘 봉양하였으며, 사람들을 대할 때는 두 얼굴로 대하지 않았다. 부친이 전라남도 창평(昌平)에 있을 때, 간혹 집안일을 부탁하고 서울 낙산(駱山) 기슭에 우거하고 있으면 매번 찾아뵙고 일 년이나 한 달 정도 머물다 오곤 하였다. 서울과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도 봉양하는 정성을 그치지 않았다.
1696년(숙종 22) 겨울 부친이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조짐을 보고 머물러 모시었는데 이듬해인 1697년(숙종 23) 2월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에 있다.
[참고문헌]
屛溪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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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