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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좌(金日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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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해(汝該)
호(號)만은(晩隱)
생년1664(현종 5)
졸년1722(경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부령(扶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근(金瑾)
고조부김응별(金應鱉)
출신지부안(扶安)

[상세내용]

김일좌(金日佐)
1664년(현종 5)∼1722년(경종 2).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해(汝該)이고, 호는 만은(晩隱)이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출신지도 부안(扶安)이다.

고조부는 진사(進士) 김응별(金應鱉)이고, 부친은 김근(金瑾)으로,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형은 김석좌(金碩佐)김익좌(金益佐)이다.

1690년(숙종 16) 경오 식년 생원시 3등에 13위로 합격하였으며, 1693년(숙종 19) 계유식년문과시 을과 7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공조좌랑(工曹佐郞)이조좌랑(吏曹佐郞)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외직으로 운봉현감(雲峰縣監)회덕현감(懷德縣監)횡성현감(橫城縣監)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이조정랑(吏曹正郞)까지 이르렀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과도 서신 왕래가 있을 정도로 교유 관계를 가졌다. 사돈 박광일의 문집 『손재집(遜齋集)』에는 김일좌에 대해 “(文德兼才能: 문덕과 재능을 겸비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만시(輓詩)가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1699년(숙종 25) 3월 19일 기사에는 당시 운봉현감을 지내던 그가 호남(湖南)의 감시(監試) 때에 같은 고향의 유생(儒生)들을 시험장소로 데리고 가 4명이나 합격시켰으며, 이에 따라 사사로운 정을 개입시킨 죄를 물어 하옥되었으나, 당시 가뭄이 심함을 안타깝게 여겨 석방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자녀로 박광일(朴光一)의 아들 박중거(朴重擧)에게 시집보낸 딸이 있다.

[참고문헌]

호남지
전북지
조선호남지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