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장(曺善長)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70C120C7A5B1661X0 |
| 자(字) | 인백(仁伯) |
| 호(號) | 병애(屛厓) |
| 생년 | 1661(현종 2) |
| 졸년 | 1726(영조 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창녕(昌寧)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조선장(曺善長)
1661년(현종 2)∼1726년(영조 2).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병애(屛厓)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천(永川)이다.
조희익(曺希益)의 후손이다.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서 퇴계의 학맥을 이었으며, 모여(茅廬) 이명윤(李命尹)과 교유하였으며, 정규양(鄭葵陽)‧정만양(鄭萬陽)‧정석달(鄭碩達) 등과는 편지로 학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제자백가의 글을 두루 읽었으며, 장희빈(張嬉嬪)을 비난하는 상소를 봉입(捧入: 물건을 거두어 받아들임.)하지 않았던 승정원 승지의 처벌을 주장한 이덕표(李德標) 등의 상소에 참여하였다.
창주서원(滄洲書院)에 조상치(曺尙治)‧조한보(曺漢輔)‧조한영(曺漢英)과 함께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시문집인 『병애집(屛厓集)』이 전한다.
조희익(曺希益)의 후손이다.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서 퇴계의 학맥을 이었으며, 모여(茅廬) 이명윤(李命尹)과 교유하였으며, 정규양(鄭葵陽)‧정만양(鄭萬陽)‧정석달(鄭碩達) 등과는 편지로 학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제자백가의 글을 두루 읽었으며, 장희빈(張嬉嬪)을 비난하는 상소를 봉입(捧入: 물건을 거두어 받아들임.)하지 않았던 승정원 승지의 처벌을 주장한 이덕표(李德標) 등의 상소에 참여하였다.
창주서원(滄洲書院)에 조상치(曺尙治)‧조한보(曺漢輔)‧조한영(曺漢英)과 함께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시문집인 『병애집(屛厓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