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홍(延世鴻)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5F0C138D64DB1661X0 |
| 자(字) | 중진(仲進) |
| 호(號) | 춘하당(春賀堂) |
| 생년 | 1661(현종 2) |
| 졸년 | 1735(영조 11)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곡산(谷山)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상세내용]
연세홍(延世鴻)
1661년(현종 2)∼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 의병. 자는 중진(仲進)이고, 호는 춘하당(春賀堂)이다. 본관은 곡산(谷山)이고, 거주지는 충청북도 음성현(陰城縣)이다.
곡산부원군(谷山府院君) 정후공(靖厚公) 연사종(延嗣宗)의 8대손으로, 증조부는 증시정(贈寺正) 연준수(延俊秀)이고, 조부는 증참의(贈參議) 연탁(延濯)이며, 부친은 증참판(贈參判) 연진장(延震章)이다. 외조부는 증참의 김용하(金用夏)이다. 부인은 이수문(李秀文)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모친을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형제가 일곱 명이었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종족과도 화목하게 지내며 가난을 구휼하였다. 영조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을 일으켜 원종공신에 녹권되어 중추부(中樞府) 실직을 제수받고 삼대가 추증되었다. 이때 받은 녹봉을 덜어서 노원(蘆原)에 있는 비조의 묘갈을 바꾸었다. 1731년(영조 7)과 1732년(영조 8)에 거듭 대기근이 들자 굶주린 백성 수천 명을 구제하여 근방 네 고을에 은혜를 베풀었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현(陰城縣) 서쪽 사오랑산(沙五郞山)에 있다.
선조 연사종‧안음현감(安陰縣監) 연충수(延忠秀)‧의민공(毅愍公) 연최적(延最績)‧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연세홍(延世鴻)과 함께 금당서원(金唐書院)에 배향되었다.
곡산부원군(谷山府院君) 정후공(靖厚公) 연사종(延嗣宗)의 8대손으로, 증조부는 증시정(贈寺正) 연준수(延俊秀)이고, 조부는 증참의(贈參議) 연탁(延濯)이며, 부친은 증참판(贈參判) 연진장(延震章)이다. 외조부는 증참의 김용하(金用夏)이다. 부인은 이수문(李秀文)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모친을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형제가 일곱 명이었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종족과도 화목하게 지내며 가난을 구휼하였다. 영조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을 일으켜 원종공신에 녹권되어 중추부(中樞府) 실직을 제수받고 삼대가 추증되었다. 이때 받은 녹봉을 덜어서 노원(蘆原)에 있는 비조의 묘갈을 바꾸었다. 1731년(영조 7)과 1732년(영조 8)에 거듭 대기근이 들자 굶주린 백성 수천 명을 구제하여 근방 네 고을에 은혜를 베풀었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현(陰城縣) 서쪽 사오랑산(沙五郞山)에 있다.
선조 연사종‧안음현감(安陰縣監) 연충수(延忠秀)‧의민공(毅愍公) 연최적(延最績)‧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연세홍(延世鴻)과 함께 금당서원(金唐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鳳巖集
[집필자]
박경이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