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추(曺爾樞)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70C774CD94B1661X0 |
| 자(字) | 원경(元卿) |
| 호(號) | 사우당(四友堂) |
| 생년 | 1661(현종 2) |
| 졸년 | 1707(숙종 33)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남평(南平)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조전(曺恮) |

[상세내용]
조이추(曺爾樞)
1661년(현종 2)∼1707년(숙종 33).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원경(元卿), 호는 사우당(四友堂).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부친은 조전(曺恮)이다. 어려서는 공명(功名)에 뜻을 두고 활쏘기와 말타기로 일을 삼았다. 성장하며 깨달음이 있어 문을 걸어 잠그고 독서를 했는데, 계절이 바뀌어 매서운 추위와 큰 더위 아래서도 잠시도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성리학에 침잠해 마침내 얻는 바가 있어 많은 학자들이 그를 따랐다. 또 중국 남전(藍田) 지방의 향약과 우리나라 도산(陶山)의 향규(鄕規)를 취해 14조의 향약을 만들어 고을을 바로잡기도 했다. 집이 활천(活川) 근처에 있었는데 벼가 염해를 입자 옛 사창(社倉)의 제도를 따라 백성을 구휼했다.
늘 산수를 좋아하여 집을 짓고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어 당호를 사우당(四友堂)이라고 하였다.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부친은 조전(曺恮)이다. 어려서는 공명(功名)에 뜻을 두고 활쏘기와 말타기로 일을 삼았다. 성장하며 깨달음이 있어 문을 걸어 잠그고 독서를 했는데, 계절이 바뀌어 매서운 추위와 큰 더위 아래서도 잠시도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성리학에 침잠해 마침내 얻는 바가 있어 많은 학자들이 그를 따랐다. 또 중국 남전(藍田) 지방의 향약과 우리나라 도산(陶山)의 향규(鄕規)를 취해 14조의 향약을 만들어 고을을 바로잡기도 했다. 집이 활천(活川) 근처에 있었는데 벼가 염해를 입자 옛 사창(社倉)의 제도를 따라 백성을 구휼했다.
늘 산수를 좋아하여 집을 짓고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어 당호를 사우당(四友堂)이라고 하였다.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홍현성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