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덕승(孫德升)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190B355C2B9B1659X0 |
| 자(字) | 현수(玄叟) |
| 호(號) | 매호(梅湖) |
| 생년 | 1659(효종 10) |
| 졸년 | 1725(영조 1)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경주(慶州)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손건(孫鍵) |
| 조부 | 손종계(孫宗啓) |

[상세내용]
손덕승(孫德升)
1659년(효종 10)∼1725년(영조 1).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현수(玄叟), 호는 매호(梅湖).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의 후손이다. 조부는 손종계(孫宗啓)이고, 부친은 손건(孫鍵)이다.
문벌로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되어 있던 중, 1684년(숙종 10)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김천도역승(金泉道驛丞)을 지냈다. 김천도역승으로 있을 때, 치적이 많아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만년에는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기르며, 『심경(心經)』, 『근사록(近事錄)』 등에 심취하였다. 1725년(영조 1) 67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필선(弼善)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의 후손이다. 조부는 손종계(孫宗啓)이고, 부친은 손건(孫鍵)이다.
문벌로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되어 있던 중, 1684년(숙종 10)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김천도역승(金泉道驛丞)을 지냈다. 김천도역승으로 있을 때, 치적이 많아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만년에는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기르며, 『심경(心經)』, 『근사록(近事錄)』 등에 심취하였다. 1725년(영조 1) 67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필선(弼善)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嶺南人物考
朝鮮人名辭書
嶺南人物考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조양원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