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중량(沈仲良)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2ECC911B7C9B1658X0 |
| 자(字) | 사성(師聖) |
| 생년 | 1658(효종 9)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청송(靑松)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심재(沈梓)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심중량(沈仲良)
1658년(효종 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성(師聖)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심창(沈昶)이고, 조부는 심유행(沈儒行)이며, 부친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심재(沈梓)이다. 외조부는 이상건(李象乾)이고, 처부는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이다. 형 심최량(沈最良)과 동생 심계량(沈季良)이 있다.
1675년(숙종 1) 식년시에 생원 3등 45위로 합격하였고, 1687년(숙종 13) 알성시에 병과 3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검열(檢閱)‧교리(校理)‧영남어사(嶺南御史)‧시독관(侍讀官)‧호조참의(戶曹參議)‧승지(承旨)‧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690년(숙종 16) 직산(稷山) 지역의 흉년이 극심함을 아뢰자 임금으로부터 흉년이 극심한 지역의 세두(稅豆)를 감면하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1691년(숙종 17) 경상도 지역에 암행(暗行)을 나갔다. 같은 해에 삼사(三司)의 신분으로 인견(引見)하는 자리에 나아가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병을 핑계로 들어가지 않았다가 죄를 묻는 문초를 받았다. 1708년(숙종 34) 당(黨)을 배신한 송정규(宋廷奎)가 강원도감사(江原道監司)로 제수되어 오자 같은 강원도 관하의 수령으로 있던 이우겸(李宇謙)과 함께 이윤문(李允文)을 사주하여 송정규를 탄핵시켰다. 아들은 1722년(경종 2)의 신임옥사를 일으킨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과 내통하였다가 쫓겨난 심수관(沈受觀)이며, 손자는 사치를 일삼다 쫓겨난 심성연(沈成衍)과 반역을 도모하다 처형된 심정연(沈鼎衍)이 있다.
증조부는 심창(沈昶)이고, 조부는 심유행(沈儒行)이며, 부친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심재(沈梓)이다. 외조부는 이상건(李象乾)이고, 처부는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이다. 형 심최량(沈最良)과 동생 심계량(沈季良)이 있다.
1675년(숙종 1) 식년시에 생원 3등 45위로 합격하였고, 1687년(숙종 13) 알성시에 병과 3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검열(檢閱)‧교리(校理)‧영남어사(嶺南御史)‧시독관(侍讀官)‧호조참의(戶曹參議)‧승지(承旨)‧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690년(숙종 16) 직산(稷山) 지역의 흉년이 극심함을 아뢰자 임금으로부터 흉년이 극심한 지역의 세두(稅豆)를 감면하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1691년(숙종 17) 경상도 지역에 암행(暗行)을 나갔다. 같은 해에 삼사(三司)의 신분으로 인견(引見)하는 자리에 나아가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병을 핑계로 들어가지 않았다가 죄를 묻는 문초를 받았다. 1708년(숙종 34) 당(黨)을 배신한 송정규(宋廷奎)가 강원도감사(江原道監司)로 제수되어 오자 같은 강원도 관하의 수령으로 있던 이우겸(李宇謙)과 함께 이윤문(李允文)을 사주하여 송정규를 탄핵시켰다. 아들은 1722년(경종 2)의 신임옥사를 일으킨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과 내통하였다가 쫓겨난 심수관(沈受觀)이며, 손자는 사치를 일삼다 쫓겨난 심성연(沈成衍)과 반역을 도모하다 처형된 심정연(沈鼎衍)이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文科榜目
肅宗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