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박중채(朴重采)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15C911CC44B1654X0
자(字)중회(仲晦)
호(號)죽옹(竹翁)
생년1654(효종 5)
졸년1725(영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학자 > 성리학자

[상세내용]

박중채(朴重采)
1654년(효종 5)∼1725년(영조 1). 조선 중기 성리학자. 자는 중회(仲晦)이고, 호는 죽옹(竹翁)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이다.

조부는 모효재(慕孝齋) 박지현(朴之賢)이고, 부친은 경양재(景陽索) 박태고(朴太古)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글을 익힌 후 집안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 연구에 뜻을 두고, 『성학요서집(性學要書輯)』을 지어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윤병계(尹屛溪)‧윤석문(尹石門)과 교유하였다.

1748년(영조 24) 학문과 덕행으로 장릉참봉(莊陵參奉)에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천리(天理)를 깨닫는 데 중점을 두고 수행에 힘쓰면서, 후학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유생들과 함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을 문묘에 배향하도록 상소를 올렸다.

사후에 사림들에 의해 지산서원(芝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죽옹문집(竹翁文集)』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