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기(李命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A85AE30B1653X0 |
자(字) | 성필(聖弼) |
호(號) | 청옹(聽翁) |
생년 | 1653(효종 4) |
졸년 | 1716(숙종 4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벽진(碧珍)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명기(李命夔)
1653년(효종 4)∼1716년(숙종 42).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성필(聖弼)이고, 호는 청옹(聽翁)이다.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증조부는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 이만생(李晩生)이고, 조부는 이계윤(李繼胤)이다. 부친은 이이주(李而柱)이고, 모친은 서강의(徐强誼)의 딸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생부는 남회당(覽懷堂) 이이두(李而杜)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최익남(崔翊南)의 딸 경주최씨(慶州崔氏)이고, 둘째 부인은 권규(權奎)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77년(숙종 3) 진사가 되었고, 1689년(숙종 15) 태학(太學)에서 학업을 하였다.
1689년 겨울에 임금이 친히 시험했던 대책문이 3등으로 뽑혀 벼슬을 주려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 병과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죽은 지 몇 달 후에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고, 31년 뒤에 증승정원주서(贈承政院注書)에 제수되었다.
『대학(大學)』에 심취하여 늙도록 부지런히 힘썼으며, 세상의 변화하는 실상을 모두 하늘에서 명을 듣는다고 생각하여 ‘청옹’으로 자호하였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의룡(李宜龍)‧이의명(李宜明)‧이의한(李宜翰)이다.
증조부는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 이만생(李晩生)이고, 조부는 이계윤(李繼胤)이다. 부친은 이이주(李而柱)이고, 모친은 서강의(徐强誼)의 딸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생부는 남회당(覽懷堂) 이이두(李而杜)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최익남(崔翊南)의 딸 경주최씨(慶州崔氏)이고, 둘째 부인은 권규(權奎)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77년(숙종 3) 진사가 되었고, 1689년(숙종 15) 태학(太學)에서 학업을 하였다.
1689년 겨울에 임금이 친히 시험했던 대책문이 3등으로 뽑혀 벼슬을 주려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 병과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죽은 지 몇 달 후에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고, 31년 뒤에 증승정원주서(贈承政院注書)에 제수되었다.
『대학(大學)』에 심취하여 늙도록 부지런히 힘썼으며, 세상의 변화하는 실상을 모두 하늘에서 명을 듣는다고 생각하여 ‘청옹’으로 자호하였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의룡(李宜龍)‧이의명(李宜明)‧이의한(李宜翰)이다.
[참고문헌]
大山集
[집필자]
정도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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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2-25 | 아들 이의한이 찬한 행장들을 참고하여 본관을 성산(星山)에서 벽진(碧珍)으로 수정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