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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몽삼(辛夢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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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삼(省三)
자(字)공삼(公參)
호(號)일암(一庵)
생년1648(인조 26)
졸년1711(숙종 37)
시대조선중기
본관영산(靈山)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신몽삼(辛夢參)
1648년(인조 26)∼1711년(숙종 37).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성삼(省三)‧공삼(公參)이고, 호는 일암(一庵)이다. 본관은 영산(靈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이다.

증조부는 선전관(宣傳官) 신유후(申有後)이고, 조부는 신탁(申㤞)이다. 부친 신대림(申大臨)과 모친 부호군(副護軍) 송지원(宋知遠)의 딸 용성송씨(龍城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안명(安命)의 딸 탐진안씨(耽津安氏)이다.

부친이 꿈에 증자(曾子)를 보고 낳았다고 하여 어려서 자(字)는 ‘공삼’이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깨끗하고 배우지 않아도 잘 알아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1655년(효종 6) 조부상을 당하고 거상(居喪)을 마친 후에 외삼촌 송정현(宋廷賢)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공부한 지 1년 만에 문리가 트여 돌아왔다. 족부(族父) 신민행(申敏行)으로부터 이서(二書)를 배우고는 경서자집(經書子集)은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도 막힘없이 이해하였으며 의문 나는 부분은 주석을 보고 질정(質正)하거나 역해(譯解)를 참고하여 상세히 알고 두루 통하였다. 세상에 늦게 태어나 퇴계(退溪) 이황(李滉)‧남명(南冥) 조식(曺植) 두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을 애석해하였다. 도움 받을 만한 스승과 친구가 없어서 날마다 경서와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심경(心經)』 등의 책을 공부하면서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렸다. 가묘(家廟) 아래에 서재 동암(東巖)을 짓고 경서 연구에 힘쓰면서 세속의 학문과 당시 유행하는 문장에 대해서는 급급해하지 않았다.

1675년(숙종 1) 증광시 생원 3등 16위로 합격한 후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는데, 특히 주희(朱熹)와 이황(李滉)의 학문에 몰두하였다.

1675년(숙종 1) 증광시에 1676년(숙종 2) 경상남도 초계(草溪: 현 합천) 가리현(佳里峴)으로 이사하였다.

1679년(숙종 5) 조모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친상을 당하였다. 1686년(숙종 12) 고향으로 돌아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佑)가 우거(寓居)하던 창암(滄巖)에 임시로 집을 짓고 거처하였다. 학덕과 인품으로 조정에 여러 번 천거를 받아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 『일암집(一庵集)』이 전한다.

묘는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초계면(草溪面)에 있다.

[참고문헌]

司馬榜目
訥隱集

[집필자]

고윤수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