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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유(李世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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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세백(李世白)
이명(異名)이세유(李世維)
자(字)특세(特世)
호(號)기국옹(杞菊翁)
생년1645(인조 23)
졸년1711(숙종 37)
시대조선중기
본관부평(富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세유(李世維)
1645년(인조 23)∼1711년(숙종 3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특세(特世)이고, 호는 기국옹(杞菊翁)이며, 초명은 이세백(李世白)‧이세유(李世維)이다.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증조부는 병조좌랑(兵曹佐郞)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이계록(李繼祿)이고, 조부는 직산현감(稷山縣監) 이덕순(李德純)이다. 부친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이재(李以載)와 모친 종성부사(鍾城府使) 김치원(金致遠)의 딸 부안김씨(扶安金氏)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인은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의 손녀이자 박궤(朴潰)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당시 재상(宰相)과 이름이 같아서 초명 이세백을 이세유로 바꾸었다.

어려서는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자라서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예(文藝)가 크게 이루어졌다.

1679년(숙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목릉참봉(穆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1694년(숙종 20)에 50세의 나이로 을과에 문과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병조좌랑(兵曹佐郞)‧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호조좌랑(戶曹佐郞)‧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강원도사(江原都事)‧남양부사(南陽府使)‧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경종이 동궁에 있을 때 오래도록 시강(侍講)을 하면서 당쟁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는 것과 검소하고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는 도리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일깨워주었다. 그 후 길주목사(吉州牧使)‧병조참지(兵曹參知)‧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여주목사(驪州牧使) 등을 역임하고, 장단부사(長湍府使)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참고문헌]

艮齋集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