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제(韓范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BC94C81CB1634X0 |
자(字) | 일지(一之) |
생년 | 1634(인조 12) |
졸년 | 1695(숙종 2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한범제(韓范齊)
1634년(인조 12)∼1695년(숙종 2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일지(一之)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조부는 한협(韓協)이고, 부친은 한치량(韓致良)이며, 생부는 한수기(韓壽琦)이다.
1675년(숙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9년(숙종 5) 허견(許堅)이 김우명(金佑明)의 첩을 구타한 사건 등에 대해 남구만(南九萬)이 소를 올려 거론할 때 전적(典籍)으로서 함께 소를 올려 비난하였다. 이로 인해 도승지 민종도(閔宗道)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누명을 쓴 사실이 밝혀져 다시 서용되었다. 이후 지평‧장령(掌令)‧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 15) 이사명(李師命)과 홍치상(洪致祥)의 무옥이 일어났을 때 관련자로 지목되어 귀양을 갔다가 풀려나, 1694년(숙종 20) 다시 서용되었다.
조부는 한협(韓協)이고, 부친은 한치량(韓致良)이며, 생부는 한수기(韓壽琦)이다.
1675년(숙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9년(숙종 5) 허견(許堅)이 김우명(金佑明)의 첩을 구타한 사건 등에 대해 남구만(南九萬)이 소를 올려 거론할 때 전적(典籍)으로서 함께 소를 올려 비난하였다. 이로 인해 도승지 민종도(閔宗道)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누명을 쓴 사실이 밝혀져 다시 서용되었다. 이후 지평‧장령(掌令)‧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 15) 이사명(李師命)과 홍치상(洪致祥)의 무옥이 일어났을 때 관련자로 지목되어 귀양을 갔다가 풀려나, 1694년(숙종 20) 다시 서용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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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