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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음(安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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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진(景鎭)
호(號)퇴우(退憂)
생년1622(광해군 14)
졸년1685(숙종 11)
시대조선중기
본관죽산(竹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안후지(安厚之)
조부안방준(安邦俊)
처부윤유방(尹惟方)
외조부성문준(成文濬)

[상세내용]

안음(安崟)
1622년(광해군 14)∼1685년(숙종 11). 자는 경진(景鎭). 호는 송촌(松村) 또는 퇴우(退憂). 본관은 죽산(竹山[新]). 조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고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안후지(安厚之)이며, 어머니 창녕성씨는 창랑(滄浪) 성문준(成文濬)의 딸이고, 처부는 해남윤씨 윤유방(尹惟方)이다. 형은 안전(安峑)으로 보성(寶城)에 살았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인(門人)으로 문장에 능하였으며 1657년(효종 8) 정유 식년시(式年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고, 관직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이르었다.

1666년(현종 7)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대하여 서인측의 기년설(朞年說)을 반박하는 경상도 유생 유세철(柳世哲) 등 1,000여명의「의례소(議禮疏)」에 대해 470명의 전라도 유생들을 대표하여 반박 상소를 올렸다. 1680년(숙종 7)에 복선군(福善君)을 추대하려던 허견(許堅) 일파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그 후 보성읍 우산리 택촌(宅村)으로 물러나와 퇴우당(退憂堂)을 짓고 강학(講學)하였으며, 사람됨이 강직(剛直)하여 사람들에게 추중(推重)을 받았다. 효제위본(孝悌爲本), 학문자수(學問自修), 물근권리(勿近權利), 불구문지(不求聞知)를 유언(遺言)으로 남겼다. 문집으로 『송촌집(松村集)』이 남아 있다. 묘소는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현촌마을 검월등(劍月嶝)에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6-22竹山安氏族譜를 참고하여 자를 경여(景輿)에서 경진(景鎭)으로 수정함. 호, 졸년, 관직, 부 관직, 처부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