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길(李恒吉)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D56DAE38U9999X0 |
| 자(字) | 자구(子久) |
| 호(號) | 과암(果菴)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전의(全義) |
| 활동분야 | 문신 |


[상세내용]
이항길(李恒吉)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구(子久)이고, 호는 과암(果菴)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출신지는 충청남도 논산(論山)이다.
조선 중기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그의 이웃집에 살면서 수학하였는데, 제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80세의 노부모 봉양을 극진히 해, 김장생이 이항길(李恒吉)의 효심을 늘 칭찬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김장생이 호소사(號召使)의 직책으로 종군하게 되었다. 이때 이항길도 스승을 따라 후금의 적들을 토벌하였다. 그 후, 참봉의 벼슬을 버리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707년(숙종 33) 김장생의 학풍을 이어받은 문인들과 더불어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休亭書院)에 제향 되었다.
조선 중기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그의 이웃집에 살면서 수학하였는데, 제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80세의 노부모 봉양을 극진히 해, 김장생이 이항길(李恒吉)의 효심을 늘 칭찬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김장생이 호소사(號召使)의 직책으로 종군하게 되었다. 이때 이항길도 스승을 따라 후금의 적들을 토벌하였다. 그 후, 참봉의 벼슬을 버리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707년(숙종 33) 김장생의 학풍을 이어받은 문인들과 더불어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休亭書院)에 제향 되었다.
[참고문헌]
기년편고(紀年便考)
[집필자]
이후남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