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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문(辛允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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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야(子野)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영산(靈山)
활동분야문신
신숙거(辛叔琚)

[상세내용]

신윤문(辛允文)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자는 자야(子野)이다.

부친은 신숙거(辛叔琚)이다. 동생은 신윤무(辛允武)이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참가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임명되었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513년(중종 8년) 박영문(朴永文)‧신유무(辛允武)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밀고로 인하여 모두 처형당하였다. 이때 신유무의 친형인 신윤문은 연좌(連坐)되어 부처(付處)에 처해졌다. 1513년(중종 8) 집의(執義) 김협(金協) 등이 신윤문을 공신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중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1513년(중종 8) 대간(臺諫)이 신윤문을 훈적(勳籍)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고, 중종은 신윤문의 훈적을 삭제하고 노비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1515년(중종 10) 중종은 신윤문의 죄는 연좌에 의한 것이고, 그의 공은 처음부터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니 다시 훈적을 주는 것이 어떤지 대신들로 하여금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유순(柳洵)‧정광필(鄭光弼) 등은 반역과 같은 국가의 큰 죄로 연좌된 사람을 다시 훈적에 올리는 것은 불가하다는 답을 올렸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