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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로(申奉盧)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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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헌충(獻忠)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부신보(申輔)

[상세내용]

신봉로(申奉盧)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헌충(獻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증조부는 신가권(申可權)이고, 조부는 신사겸(申士謙)이며, 부친은 신보(申輔)이다. 형 신봉전(申奉全)이 있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 문과에 병과 21위로 급제하였다.

1503년(연산군 9) 양로연(養老宴)에서 임금의 옷에 술을 쏟아서 온성(穩城)‧영월(寧越)로 유배된 이세좌(李世佐)를 더 먼 지방으로 유배보 낼 것을 청하였고,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명을 거역한 홍귀달(洪貴達)에게 내려진 장형(杖刑)‧유배형이 약하다며 더 중한 형벌로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였다. 같은 해 폐비 윤씨의 시호(諡號) 및 능호(陵號)를 추가로 올리는 일에 황성창(黃誠昌)‧김세필(金世弼)‧정침(鄭沈)‧유인귀(柳仁貴)와 함께 반대하다가 장 80대를 맞고 진산(珍山)으로 유배되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임명되었고, 1509년(중종 4)에 회령판관(會寧判官)으로 재직 중, 병을 핑계로 휴가를 받아서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또한, 1511년 수안군수(遂安郡守)로 재직하였는데, 욕심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수령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간언의 대상이 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