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손(鄭文孫)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BB38C190B1473X0 |
| 자(字) | 광윤(光胤) |
| 호(號) | 모효재(慕孝齋) |
| 생년 | 1473(성종 4) |
| 졸년 | 1554(명종 9)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하동(河東)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 증조부 | 정희주(鄭希周) |

[상세내용]
정문손(鄭文孫)
1473년(성종 4)~1554년(명종 9).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광윤(光胤), 호는 모효재(慕孝齋)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부는 장령(掌令) 정희주(鄭希周)이고, 조부는 정의중(鄭宜仲), 부친은 정승서(鄭承敍)이다. 처부는 평산신씨(平山申氏) 신계규(申季糾)이다.
타고난 품성이 매우 효성스스러웠고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며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게을리 아니하여 일찌감치 문예를 이루었다. 중종 조에 생원에 올라 반학(泮學)하였으며, 기묘사화 때에는 200여 관생과 함께 상소하여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임천으로 물러나서 금강정(錦江亭)을 짓고 후진을 지도하였다. 재야에 있으면서도 지극히 효도하여 마을에서 모두 공경하였다는 사실이 『기묘명현록(己卯名賢錄)』에 기록되었다. 모산사(茅山祠)에 배향되었다.
증조부는 장령(掌令) 정희주(鄭希周)이고, 조부는 정의중(鄭宜仲), 부친은 정승서(鄭承敍)이다. 처부는 평산신씨(平山申氏) 신계규(申季糾)이다.
타고난 품성이 매우 효성스스러웠고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며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게을리 아니하여 일찌감치 문예를 이루었다. 중종 조에 생원에 올라 반학(泮學)하였으며, 기묘사화 때에는 200여 관생과 함께 상소하여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임천으로 물러나서 금강정(錦江亭)을 짓고 후진을 지도하였다. 재야에 있으면서도 지극히 효도하여 마을에서 모두 공경하였다는 사실이 『기묘명현록(己卯名賢錄)』에 기록되었다. 모산사(茅山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영암군지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