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서경춘(徐景春)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ACBDCD98U9999X0
자(字)사원(士元)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이천(利川)
활동분야무신 > 무신
서간(徐諫)

[상세내용]

서경춘(徐景春)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사원(士元)이다.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진사 서간(徐諫)의 아들로 태어났다.

1579년(선조 12)에 좌랑(佐郞)에 올랐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노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당하자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護衛) 하기 위해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양식을 챙겨 서둘러 상경(上京)하였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발하였으며, 이때 왜군은 수많은 백성들을 비롯하여 관리들과 학자들까지 잡아 갔다. 당시 그는 행재소(行在所)로 가는 길에 왜군에게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때 그와 함께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는 형조좌랑(刑曹佐郞) 강항(姜沆)하동(河東)강사준(姜士俊)강천구(姜天柩)정창세(鄭昌世), 그리고 함양(咸陽)박여집(朴汝輯) 등이 있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잡혀가 일본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절조를 지키며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김우정(金禹鼎)을 만났다. 그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탈출을 시도하기로 결의하고, 일본에서 나눠주는 곡식을 모아서 팔거나 일본 중[僧]들에게 글씨를 써 주는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배 한 척을 구하였다. 이때 강항의 식솔들, 한양신덕기(申德驥)진주(晉州)정연수(鄭連守)가 배를 젓기로 하고 배가 있는 곳까지 이르렀는데, 왜군 한 명이 밀고를 하는 바람에 모두 체포되어 20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1600년(선조 33) 2월에 일본에서 포로들을 석방시켜주었다. 그들은 귀국할 배편을 알아보고 음력 4월 2일에 일본을 출발하여 5월 5일 귀국을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끌려간 지 3년 만에 풀려난 사람들을 용감하게 여겨 관직을 제수(除授)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에 제수(除授)되었다. 그러나 그는 적지(敵地)에서 살아 돌아온 죄인일 뿐이라며 두문불출하고 살았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노인(魯認)『금계집(錦溪集)』 「만요척험(蠻徼陟險)」「왜굴탐정(倭窟探情)」「피부동고록(被俘同苦錄)」『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강항(姜沆)『수은집(睡隱集)』「섭란사적(涉亂事迹)」, 그리고 성해응(成海應)『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노인(魯認) 김영철(金永哲) 최척(崔陟)」 등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무안군지
睡隱集
錦溪集
硏經齋全集
운봉방(http://blog.daum.net/kby257/12546516)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