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현(柳希賢)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20D76CD604B1542X0 |
| 자(字) | 면이(勉而) |
| 호(號) | 성인재(成仁齋)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문화(文化)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 처 | 강씨(姜氏) |

[상세내용]
유희현(柳希賢)
생졸년 미상.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면이(勉而), 호는 성인재(成仁齋).
별제(別提)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나자, 상주(尙州)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과 교전하다, 온몸에 유시(流矢: 누가 어디서 쏘았는지 모르게 날아오는 화살)를 맞고 돌아가셨으며, 소식을 들은 부인 강씨(姜氏)도 따라 죽었다. 아들 유여굉(柳汝宏)과 유여령(柳汝寧)은 모두 어렸으나, 원수를 갚기 위해 손에 칼을 들고 적진에 뛰어 들어 왜구 몇 명을 베었다. 그러나 왜구는 두 아들의 의로움에 감격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일본으로 끌고 갔으나, 10년이 지나도록 굴하지 않았다. 일본 관백(關白: 성인(成人)이 된 천황의 최고 보좌관 또는 섭정.)이 충효를 높게 사서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며 충렬(忠烈)이라 명명하였다.
별제(別提)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나자, 상주(尙州)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과 교전하다, 온몸에 유시(流矢: 누가 어디서 쏘았는지 모르게 날아오는 화살)를 맞고 돌아가셨으며, 소식을 들은 부인 강씨(姜氏)도 따라 죽었다. 아들 유여굉(柳汝宏)과 유여령(柳汝寧)은 모두 어렸으나, 원수를 갚기 위해 손에 칼을 들고 적진에 뛰어 들어 왜구 몇 명을 베었다. 그러나 왜구는 두 아들의 의로움에 감격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일본으로 끌고 갔으나, 10년이 지나도록 굴하지 않았다. 일본 관백(關白: 성인(成人)이 된 천황의 최고 보좌관 또는 섭정.)이 충효를 높게 사서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며 충렬(忠烈)이라 명명하였다.
[참고문헌]
海東人物志
[집필자]
박경이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