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낙선(睦樂善)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AA9B099C120B1585X0 |
자(字) | 성중(誠仲) |
호(號) | 호옹(壺翁)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사천(泗川) |
활동분야 | 충효열 > 효자‧효녀 |
부 | 목수흠(睦守欽) |
[상세내용]
목낙선(睦樂善)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성중(誠仲), 호는 호옹(壺翁).
의금부도사 목수흠(睦守欽)의 아들이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난 뒤로는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김포에 은퇴하여 두문불출, 절조를 지켰다. 인조반정 후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4일 동안 음식을 들지 않았으며, 탈상 때까지 만 2년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뒤에도 성묘를 계속하여 묘의 둘레에 작은 길이 날 정도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온화, 간결하여 벼슬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자기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의금부도사 목수흠(睦守欽)의 아들이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난 뒤로는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김포에 은퇴하여 두문불출, 절조를 지켰다. 인조반정 후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4일 동안 음식을 들지 않았으며, 탈상 때까지 만 2년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뒤에도 성묘를 계속하여 묘의 둘레에 작은 길이 날 정도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온화, 간결하여 벼슬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자기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