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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희경(馬羲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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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적(仲積)
호(號)죽계(竹溪)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목천(木川)
활동분야학자 > 유생
마승원(馬乘元)
출생지개성

[상세내용]

마희경(馬羲慶)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중적(仲積), 호는 죽계(竹溪). 부는 마승원(馬乘元).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나면서부터 남달리 영특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당대 문명이 높은 서경덕(徐敬德)을 사사하여 학문의 깊은 뜻을 습득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오직 학문에만 전력하였다.

1581년 이이(李珥)가 천거하여 북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특히 그는 역학과 성리학에 심취하여 그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어느 날 윤두수(尹斗壽)가 찾아가서 그의 학자됨을 보고 “난초는 고랑에 깊었으나 그 향기 저절로 스며드네.”라 하여 그의 학문을 높이 칭송하였다.

개성사현사(四賢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木川馬氏世譜

[집필자]

윤혁동(尹焃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