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택(金福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CF5D0DDD1740X0 |
생년 | ?(미상) |
졸년 | 1740(영조 1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조부 | 김만기(金萬基) |
[상세내용]
김복택(金福澤)
미상∼1740년(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성부원군(光成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의 손자이며, 인경왕후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경종의 건강이 나쁘고 세자도 없어 세제(世弟) 책봉을 논의하자, 그는 서덕수(徐德修)를 통하여 당시 잠저(潛邸)에 있던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김창집 등의 주장으로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어 정무를 대리하므로, 책봉에 반대하던 소론 승지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은 노론 4대신을 무고하여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이때 그도 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724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영휘전참봉(永徽殿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임사화 때 노론파의 대다수가 죽었는데도 유배만 당하였던 사실과 신임사화를 비난한 것이 영조의 비위에 거슬려 1740년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그뒤 영조는 자신의 지나친 조처를 후회하였다.
1779년(정조 3) 신임사화 때 죽은 노론파 대신을 증시(贈諡)하면서 그도 증질(贈秩)되고 자손은 녹용(錄用)하도록 하였다.
1721년(경종 1)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경종의 건강이 나쁘고 세자도 없어 세제(世弟) 책봉을 논의하자, 그는 서덕수(徐德修)를 통하여 당시 잠저(潛邸)에 있던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김창집 등의 주장으로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어 정무를 대리하므로, 책봉에 반대하던 소론 승지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은 노론 4대신을 무고하여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이때 그도 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724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영휘전참봉(永徽殿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임사화 때 노론파의 대다수가 죽었는데도 유배만 당하였던 사실과 신임사화를 비난한 것이 영조의 비위에 거슬려 1740년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그뒤 영조는 자신의 지나친 조처를 후회하였다.
1779년(정조 3) 신임사화 때 죽은 노론파 대신을 증시(贈諡)하면서 그도 증질(贈秩)되고 자손은 녹용(錄用)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명 : "복택(福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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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