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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응(南泰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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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숙(禧叔)
호(號)청죽(聽竹)
생년1687(숙종 13)
졸년1740(영조 16)
시대조선중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문학 > 문인
조부남치훈(南致熏)
저서『청죽만록(聽竹漫錄)』
저서『청죽화사(聽竹畵史)』
저서『청죽만록』
저서『청죽별지(聽竹別識)』

[상세내용]

남태응(南泰膺)
1687년(숙종 13)∼1740년(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인. 자는 희숙(禧叔), 호는 선주(仙舟) 또는 청죽(聽竹). 본관은 의령(宜寧). 1708년(숙종 34) 진사가 되었으나 관에 나아가지 않았고, 사옹원봉사를 지냈다고 『의령남씨세보』에 적혀 있으나 실직(實職)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출세할 수 없었던 것은 작은 할아버지 남치훈(南致熏)이 1689년 기사환국 때 세자책봉이 시기상조라고 반대한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한 적이 있는데, 이후 노론정권시대로 들어가면서 소론계였던 집안의 관로가 막혔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남태응『청죽만록(聽竹漫錄)』이라는 8권의 문집을 저술할 정도로 높은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으며, 특히 그의 문집 중 『청죽화사(聽竹畵史)』는 조선시대 화론 중에서 가장 뛰어난 비평적 견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숙종연간에 활약한 정보를 담고 있는 글이다.

따라서, 남태응은 동시대에 볼 수 있는 은일문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묘지(墓誌)는 참판을 지낸 이정작(李庭綽)이 썼다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나 남태응에 대한 더 이상의 행적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의 문집 『청죽만록』은 육필 미간본으로 아직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통문관은 외전 8책 중 6책만을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 2책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이 책은 이괄(李适)의 난 시말기(始末記) 등 정치적‧사회적 사건의 자초지종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수필형식으로 쓴 것이며, 별책으로 구성된 『청죽별지(聽竹別識)』에는 청죽납피잡지(聽竹衲被雜識)‧논동방문장(論東方文章)‧화사(畵史)‧삼화가유평(三畵家踰評)‧화사보록상(畵史補錄上)‧화사보록하(畵史補錄下) 등 문장론(文章論)과 화사(畵史)에 관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南泰膺 聽竹畵史解題 및 飜譯(兪弘濬‧李泰浩編, 朝鮮後期의 그림과 글씨, 學古齋, 1992)

[집필자]

유홍준(兪弘濬)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