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관(權益寬)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8CC775AD00B1676X0 |
자(字) | 홍보(弘甫) |
생년 | 1676(숙종 2) |
졸년 | 1730(영조 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권두기(權斗紀) |
외조부 | 이합(李柙) |

[관련정보]
[상세내용]
권익관(權益寬)
1676년(숙종 2)∼1730년(영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甫).
부친은 사간 권두기(權斗紀)이며, 모친은 대사간 이합(李柙)의 딸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부교리‧헌납‧세자시강원문학‧보덕‧홍문관부응교를 지냈으며, 1723년(경종 3) 충청감사가 되었다.
1724년(영조 즉위)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를 지냈다. 신임사화로 실각당했던 노론이 영조의 즉위로 재집권하자 소론을 축출하였는데, 이때 소론이었던 관계로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거제에 정배되었다.
1727년에 풀려나와 공조참의‧함경감사에 올랐으나, 1728년 같은 소론이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연좌되어 다시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그해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변방에 정배되었다.
1735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1776년에 다시 반역의 죄상이 추궁되어 관작이 추탈되었다.
부친은 사간 권두기(權斗紀)이며, 모친은 대사간 이합(李柙)의 딸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부교리‧헌납‧세자시강원문학‧보덕‧홍문관부응교를 지냈으며, 1723년(경종 3) 충청감사가 되었다.
1724년(영조 즉위)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를 지냈다. 신임사화로 실각당했던 노론이 영조의 즉위로 재집권하자 소론을 축출하였는데, 이때 소론이었던 관계로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거제에 정배되었다.
1727년에 풀려나와 공조참의‧함경감사에 올랐으나, 1728년 같은 소론이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연좌되어 다시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그해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변방에 정배되었다.
1735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1776년에 다시 반역의 죄상이 추궁되어 관작이 추탈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희권(李羲權)
명 : "익관(益寬)"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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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