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적(任守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C218C801B1671X0 |
자(字) | 길보(吉甫) |
생년 | 1671(현종 12) |
졸년 | 1744(영조 2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윤원(任胤元) |
외조부 | 권완(權俒)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수적(任守迪)
1671년(현종 12)∼1744년(영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길보(吉甫).
부친은 참판 임윤원(任胤元)이며, 모친은 권완(權俒)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음(門蔭)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25년(영조 1) 삼가현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이 되었고, 1727년 조현명(趙顯命) 등 20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그뒤 부수찬‧수찬‧헌납‧부교리‧사간‧응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고, 1734년 대사간이 되어 훈련도감 및 전라도 지방의 비정(非政)을 바로잡을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해 승지에 임명되어 그뒤 8년간이나 계속 이 직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대사간‧형조참판을 잠시 역임하기도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고금의 필법의 장점을 취하여 독특한 서체를 구사하여 당대에 명필로 이름났다고 한다.
부친은 참판 임윤원(任胤元)이며, 모친은 권완(權俒)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음(門蔭)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25년(영조 1) 삼가현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이 되었고, 1727년 조현명(趙顯命) 등 20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그뒤 부수찬‧수찬‧헌납‧부교리‧사간‧응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고, 1734년 대사간이 되어 훈련도감 및 전라도 지방의 비정(非政)을 바로잡을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해 승지에 임명되어 그뒤 8년간이나 계속 이 직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대사간‧형조참판을 잠시 역임하기도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고금의 필법의 장점을 취하여 독특한 서체를 구사하여 당대에 명필로 이름났다고 한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在澗集
淸選考
國朝榜目
在澗集
淸選考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수적(守廸)"에 대한 용례
전거 | 용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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郯述v01 | 乙卯進 父守廸庚申第豊川 校理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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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