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주(朴弼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D544C8FCB1665X0 |
자(字) | 상보(尙甫) |
호(號) | 여호(黎湖) |
시호(諡號) | 문경(文敬) |
생년 | 1665(현종 6) |
졸년 | 1748(영조 2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태두(朴泰斗) |
저서 | 『여호집(黎湖集)』 |
저서 | 『독서수차(讀書隨箚)』 |
저서 | 『주자왕복휘편(朱子往復彙編)』 |
저서 | 『춘추유례(春秋類例)』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필주(朴弼周)
1665년(현종 6)∼1748년(영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재상 송상기(宋相琦)의 추천으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된 뒤 지평‧집의 등을 거쳐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소를 올리고 기자(箕子)‧공자(孔子)‧주자(朱子) 등 삼성인(三聖人)의 서원은 훼철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여호집(黎湖集)』‧『독서수차(讀書隨箚)』‧『주자왕복휘편(朱子往復彙編)』‧『춘추유례(春秋類例)』 등이 있다.
1717년(숙종 43) 재상 송상기(宋相琦)의 추천으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된 뒤 지평‧집의 등을 거쳐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소를 올리고 기자(箕子)‧공자(孔子)‧주자(朱子) 등 삼성인(三聖人)의 서원은 훼철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여호집(黎湖集)』‧『독서수차(讀書隨箚)』‧『주자왕복휘편(朱子往復彙編)』‧『춘추유례(春秋類例)』 등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윤혁동(尹焃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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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