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한(朴泰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D0DCD55CB1664X0 |
자(字) | 교백(喬佰) |
생년 | 1664(현종 5) |
졸년 | 1698(숙종 2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고령(高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선(朴銑) |
조부 | 박장원(朴長遠) |
외조부 | 이후산(李後山) |
저서 |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
[상세내용]
박태한(朴泰漢)
1664년(현종 5)∼1698년(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교백(喬佰).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의 손자이고, 군수 박선(朴銑)의 아들이며, 모친은 형조참판 이후산(李後山)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어 신래급제자(新來及第者)의 사관분속(四館分屬)에 따른 회자(回刺)의 폐습을 과감히 철폐하고자 하였다.
급제한 뒤 4년 만에 병으로 죽어 벼슬은 승문원정자에 그쳤다. 평소 언론이 준정(峻正)하여 당파에 휩쓸리지 않아 이광좌(李光佐)‧최창대(崔昌大) 등은 그를 선배로 존경하였다.
저서로는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가 있다.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의 손자이고, 군수 박선(朴銑)의 아들이며, 모친은 형조참판 이후산(李後山)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어 신래급제자(新來及第者)의 사관분속(四館分屬)에 따른 회자(回刺)의 폐습을 과감히 철폐하고자 하였다.
급제한 뒤 4년 만에 병으로 죽어 벼슬은 승문원정자에 그쳤다. 평소 언론이 준정(峻正)하여 당파에 휩쓸리지 않아 이광좌(李光佐)‧최창대(崔昌大) 등은 그를 선배로 존경하였다.
저서로는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명 : "태한(泰漢)"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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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