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鄭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C9CFFFFB1659X0 |
자(字) | 장원(長源) |
호(號) | 첨의당(瞻依堂) |
생년 | 1659(효종 10) |
졸년 | 1724(경종 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보연(鄭普衍) |
5대조 | 정철(鄭澈) |
[상세내용]
정천(鄭洊)
1659년(효종 10)∼1724년(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장원(長源), 호는 첨의당(瞻依堂).
정철(鄭澈)의 현손으로, 원림처사(園林處士) 정보연(鄭普衍)의 아들이다.
외숙인 민정중(閔鼎重)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1684년(숙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왕후의 친척이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겨 문과를 단념하고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때 송시열이 두번에 걸쳐 올린 상소로 말미암아 유배당하게 되자 그를 유배지까지 따라가 모셨다.
1696년 왕명을 받아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이 되고 이어 동몽교관‧영춘현감을 거쳐 공조정랑을 지내고, 금천현감으로 나가 1년 동안 재직하다가 죽었다.
정철(鄭澈)의 현손으로, 원림처사(園林處士) 정보연(鄭普衍)의 아들이다.
외숙인 민정중(閔鼎重)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1684년(숙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왕후의 친척이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겨 문과를 단념하고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때 송시열이 두번에 걸쳐 올린 상소로 말미암아 유배당하게 되자 그를 유배지까지 따라가 모셨다.
1696년 왕명을 받아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이 되고 이어 동몽교관‧영춘현감을 거쳐 공조정랑을 지내고, 금천현감으로 나가 1년 동안 재직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陶菴集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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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