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윤(丁時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2DCC724B1646X0 |
자(字) | 자우(子雨) |
호(號) | 두호(斗湖) |
생년 | 1646(인조 24) |
졸년 | 1713(숙종 3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언벽(丁彦璧) |
조부 | 정호선(丁好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시윤(丁時潤)
1646년(인조 24)∼1713년(숙종 3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우(子雨), 호는 두호(斗湖).
관찰사 정호선(丁好善)의 손자로, 교리 정언벽(丁彦璧)의 아들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음보(蔭補)로 현감을 지내고, 1690년(숙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해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그뒤 정언‧부수찬‧헌납‧수찬 등 삼사의 청직(淸職)만을 두루 거쳤다.
1694년 홍문관부교리로 있을 때 남인과 소론간의 당쟁이 격화, 남인일파가 몰락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한 갑술옥사가 발생하자 남인으로 지목되어 삭직되었다.
1698년 세자시강원필선으로 복직한 뒤 일시 파직된 일이 있었으나 재기용, 관직이 병조참의에까지 이르렀다.
관찰사 정호선(丁好善)의 손자로, 교리 정언벽(丁彦璧)의 아들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음보(蔭補)로 현감을 지내고, 1690년(숙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해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그뒤 정언‧부수찬‧헌납‧수찬 등 삼사의 청직(淸職)만을 두루 거쳤다.
1694년 홍문관부교리로 있을 때 남인과 소론간의 당쟁이 격화, 남인일파가 몰락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한 갑술옥사가 발생하자 남인으로 지목되어 삭직되었다.
1698년 세자시강원필선으로 복직한 뒤 일시 파직된 일이 있었으나 재기용, 관직이 병조참의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樊巖集
國朝榜目
樊巖集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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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