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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렴(宋光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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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도원(道源)
생년1629(인조 7)
졸년1671(현종 12)
시대조선중기
본관여산(礪山)
활동분야관료

[상세내용]

송광렴(宋光濂)
1629년(인조 7)∼1671년(현종 12). 조선 중기 관료. 자는 도원(道源)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조부는 예조판서(禮曹參議)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송극인(宋克訒)이고, 부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증의정부좌참찬(贈議政府左參贊) 송시철(宋時喆)과 모친 목사(牧使) 정지경(鄭之經)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 사이에서 7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송광엄(宋光淹)과 동생 송광순(宋光洵)‧송광준(宋光浚)‧송광연(宋光淵)‧송광택(宋光澤)‧송광속(宋光涑)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감사(監司) 정시성(鄭始成)의 딸 영일정씨(迎日鄭氏)이고, 둘째 부인은 판관(判官) 김수장(金壽長)의 딸 연안김씨(延安金氏)이다.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기량이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 여덟 살 때 병자호란을 만나 청나라 군대의 포로가 되어 평안북도 의주(義州)에 다다랐다. 당시 청나라 군사들이 몸값을 받고 포로를 돌려보내곤 하였는데, 이때 돌려보내는 사람들 속에 끼어서 돌아왔지만 청나라 군사는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 후 힘써 학문을 닦아 문채가 빛났으며, 글방에서 공부할 때는 시험에서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았다. 1654년(효종 5) 식년시 진사 3등 37위로 합격한 후, 관직은 남별전참봉(南別殿參奉)‧장흥고봉사(長興庫奉事)‧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상의원직장 시절 병을 얻어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는 경기도 장단(長湍) 모성(慕城)에 있다.

[참고문헌]

約軒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