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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각(姜恪)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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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오(敬吾)
호(號)도은(陶隱)
생년1620(광해군 12)
졸년1657(효종 8)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기타 > 처사
강윤조(姜胤祖)
조부강덕서(姜德瑞)
증조부강억(姜億)

[상세내용]

강각(姜恪)
1620년(광해군 12)∼1657년(효종 8).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오(敬吾), 호는 도은(陶隱).

증조부는 강억(姜億), 조부는 강덕서(姜德瑞)이고, 부친은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지낸 강윤조(姜胤祖)이다. 잠은(潛隱) 강흡(姜恰)이 그의 큰형이다.

대대로 서울에 거주하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큰형 강흡과 더불어 부모를 모시고 안동(安東)의 북촌에 피난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서 형제가 태백산 아래에 은거하며 독서와 부모의 봉양에 전념하였다.

당시에 강흡을 비롯하여 홍우정(洪宇定), 정양(鄭瀁), 심장세(沈長世), 홍석(洪錫)을 태백오현(太白五賢)이라고 하였는데, 강각(姜恪)까지 포함하여 태백육은(太白六隱)이라고도 불렀다. 태백오현은 일찍이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지만, 강각은 추증을 받지 못하였다. 1796년 정조(正祖)의 명에 따라 병자년 절의를 지킨 처사들을 조사하는 조치에 의해 추천되었으며, 1818년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의리를 생각하고 스스로 절개를 지켰다고 하며[守義自靖], 효행과 우애를 독실하게 행하였다[敦行孝悌]고 한다.

그의 행적과 그를 추존하기 위한 통문(通文)과 상소(上疏) 등이 기록된 『도은공실기(陶隱公實記)』가 있다.

[참고문헌]

陶隱公實記

[집필자]

김성수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