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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행(金謹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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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회(鮮悔)
생년1610(광해군 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관료
김득기(金得祺)
외조부신응수(申應秀)

[상세내용]

김근행(金謹行)
1610년(광해군 2)∼미상.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선회(鮮悔).

왜어역관으로 부친은 역관 김득기(金得祺)이고 모친은 평산인(平山人) 신응수(申應秀)의 딸이며 고모가 선조의 후궁인 순빈김씨(順嬪金氏)이다. 김근행은 재산이 많고 품계가 높은 역관인데도 검소한 생활로 매사에 조심하여 현명하였다고 한다.

1627년(인조 5) 18세에 왜학 시험에 합격하고 1643년(인조 21)과 1655년(효종 6)에 각각 통신사의 상통사당상역관으로 파견되었다. 또한 그가 1640년(인조 18)에 문위행(問慰行)의 당하역관으로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모두 7차례 대마도를 다녀왔다.

문위행은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애경사(哀慶事)를 위로 및 축하하는 목적에서 파견되었던 행렬이다.

1633년에 훈련도감에서 유황과 무기의 밀수를 추진하였는데 김근행이 그 일을 맡아서 일본으로 들어가 밀매 상인과 접촉하여 유황 4만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公私見聞錄
通文館志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심량근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