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효주(呂孝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ECD6A8C8FCB1608X0 |
자(字) | 달부(達夫) |
호(號) | 남계(南溪) |
생년 | 1608(선조 41) |
졸년 | 1654(효종 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성산(星山)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관련정보]
[상세내용]
여효주(呂孝周)
1608년(선조 41)∼1654년(효종 5).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달부(達夫)이고, 호는 남계(南溪)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출신지 역시 경상북도 성주(星州)이다.
부친은 수 제용감판관(守濟用監判官) 여훤(呂烜)이다.
장현광(張顯光)과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도덕과 의리를 닦는 데 힘썼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 생원과 진사에 각각 2등 11위, 3등 20위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켰지만 임금이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며 돌아왔다.
1645년(인조 23)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시문집으로 『남계집(南溪集)』이 전하는데, 병자호란 때 비분강개하며 지은 「부강변(扶綱辯)」과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을 읊은 제문 등이 실려 있다.
부친은 수 제용감판관(守濟用監判官) 여훤(呂烜)이다.
장현광(張顯光)과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도덕과 의리를 닦는 데 힘썼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 생원과 진사에 각각 2등 11위, 3등 20위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켰지만 임금이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며 돌아왔다.
1645년(인조 23)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시문집으로 『남계집(南溪集)』이 전하는데, 병자호란 때 비분강개하며 지은 「부강변(扶綱辯)」과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을 읊은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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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